샤니 단팥빵이 최고다
by 단팥빵
"나의 노래는" - 그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스물 일곱이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쨌든 그렇게 되어 버렸다. 스물 여섯의 마지막 밤은 시시했다. 화약비가 내리는 종로통에서 사람들은 떠밀리듯 카운트를 셋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셋, 둘, 하나. 그리고 난 스물 일곱이 됐다. 서둘러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에 모르는 누군가가 갑자기 내 어깨를 부여잡고 "어이, 친구. 자네는 지금 이 시각부터 스물 일곱이라네." 라고 말 해 주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스무살에 나는 누군가를 좋아했나? 무엇에 열광했나? 아니면 마치 멀쩡한 하늘이 당장 붕괴라도 될 것 마냥 절망했나? 시간이 흘러 그런 감정의 살점들이 풍화되고 난 뒤에는 '그때 내가 그랬었다.' 라는 사실만이 남는다. 가끔 추억을 되뇌기 위해 즐겨 들었던 노래나 영화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별 것 아니라는 거다. 적어도 스물 일곱, 지금의 나에게는. 

한 없이 스무살을 꿈꾸던 때도 있었다. 딱히 무언가 거창한 것을 도모했던 건 아니다. 연애는 관심 없었고, 베낭여행은 왠지 귀찮은 일만 잔뜩일 것 같았다. 술은 먹어봤더니 맛이 없더라. 그래도 스무살이 된다면 이 더위에 바께쓰에 발 담그고, 목에 수건 걸친 채 문제집이나 풀고 있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고3 여름이었다. 그리고 스무살의 여름이 찾아왔을 때 내 꿈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대학이란 곳은 은행만큼은 아니더라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대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희철의 청춘은 막막하다. 자신의 삶에 깜짝 놀랄정도로 솔직한 할머니. 크리스마스 소원으로 '사라지게 해주세요.' 라고 빌고싶을 것만 같은 아버지. 살면서 왠만하면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은 아르바이트 동료. 당장은 크지 않지만, 언젠가 반드시 크나 큰 좌절로 다가 올 빈곤. 영화 중반, 희철이 아르바이트 하는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꾸역꾸역 면발을 넘기는 희철. 그런데 흑백으로 잡힌 그 라면, 정말 맛 없게 보인다. 희철에게 스무살이란 오색창연한 청춘의 출발점이 아니다. 어떻게든 넘겨내야 하는 맛 없어 뵈는 라면과 같다. 영화가 희철의 난감한 일상을 천천히 비춰주는 동안 난 희철에게 다가가 담배 한 대 건네주고 이렇게 말 하고 싶었다. "야, 군대나 가. 가서 나오지마." 

그러나 꽃 피울리 없는 고목나무와 같던 희철의 일상에도 나비가 날아 든다. 영화를 배우는 1학년으로 같은 스무살인 연주다. 생의 고민이라고는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잘 만들까, 이 하나밖에 없을 것만 같은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래.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잘 만들수 있을까, 바로 이거다. "나의 노래는"은 도무지 어울릴 일이 없을 것 같은 두 청춘을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잠시 한 곳에 묶어 둔다. 그리고 희철의 생활도 어떤 식으로든 변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에서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을 찾는다면 오프사이드 반칙이다. 고목은 이제 막 나비를 봤다.

영화에서 희철을 둘러 싼 모습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 된다. 하나는 흑백으로 잡힌 희철의 지긋지긋하면서도 그저그런 일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연주의 카메라를 통해 칼라로 표현 된 그야말로 희철의 청춘. 사람들은 이 두개의 청춘 중 어느 쪽에 더 익숙할까? 질문을 달리해서 둘중 어느 쪽이 스무살 희철의 모습일까? 물론 지긋지긋하면서도 그저그런 일상도 희철의 모습이고, 화사하게 편집 된 필름 속 모습도 희철이다. 그러나 대부분 후자 쪽 희철의 청춘에 익숙하다. 어떤 이는 이제 겨우 지나 온, 어떤 식으로든 남아버린 그 시절 상처가 쓰라려 외면하고 싶고, 어떤 이는 어른들이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 놓은 미디어와 영화 속 청춘 스토리에 전염되어 버렸다.

모든 스무살들의 꿈이 확고하라는 법은 없다. 스무살은 이래야 한다고 규정한 것들은 전부 어른들의 입에서 나왔다. 성적에 따라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고, 영문도 모른채 이과와 문과를 선택한다. 요즘 이십대는 야물차고 똑똑해서 가장 친근한 영어단어가 "스펙"이다. 영화 "나의 노래는" 은 화려한 영화가 아니다. 크게 한 방 먹여주는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다. 조연 중 어떤 이의 연기는 내내 관객들을 웃음짓게 했다. 그런데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내내 십대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받아들인 감독의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 서두를 필요는 없어. 지금 생각하려고 애쓰는 그게 뭔지 몰라도 돼. 하지만 계속 가. 멈추지 마. 그러다 보면 길은 나와.



       
렛츠리뷰
by 단팥빵 | 2008/04/18 15:28 |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albino.egloos.com/tb/162339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EBC (Egloos Broa.. at 2008/05/08 11:31

... s.com/1874407) Nobody (http://nobody721.egloos.com/306932) [나의 노래는 리뷰를 써주신 분] 단팥빵 (http://albino.egloos.com/1623391) 와이YY (http://yyy1228.egloos.com/1873790) 꽃삽포크렌 (http://orzorz.egloos.com/1625 ... more

Commented at 2008/04/19 19: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단팥빵 at 2008/04/20 13:23
아니, 우리 나이가 아직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

아무튼 반갑습니다.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카테고리
rss

skin by 이글루스